잡설

막막하기만 했던 연구가 미친듯이 재밌어진 건에 대하여

study_love 2026. 1. 12. 01:10

 오늘은 정말 막막하기만 했던 "연구"라는 것에 재미를 붙이게 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. 혹시 "내가 연구에 소질이 있을까?", "나한테 맞는 분야가 있긴 할까?"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제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.

 

 사실 학부 때 교수님들은 항상 저에게 "너는 연구를 하면 되게 좋아할거야"라고 말씀하셨고, 친구들도 저에게 항상 그렇게 말해왔지만, 항상 연구로부터 저를 가로막는 2가지 질문이 있었습니다. 

1. 이 분야가 나에게 최선인가? 정말 이 분야를 하면 재밌게 연구할 수 있을까?

 예전에는 랩실 홈페이지를 대충 훑어보다가 “뭔가 재밌어 보이는데?”라는 인상만으로 해당 교수님 연구실에서 인턴을 하며 그 분야의 논문을 읽는 방식으로 진로를 탐색하곤 했습니다. 보통 한 분야당 10~15편 정도의 논문을 읽었던 것 같은데, 돌이켜보면 이는 어디까지나 ‘읽어본 것’에 불과했고, 실제로 그 주제로 연구를 해본 경험은 아니었기 때문에 막상 그 분야를 연구했을 때 제가 진심으로 흥미를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. 대학원에 진학하면 짧게는 2년, 길게는 6년 이상을 한 분야에 몰두해야 하는데, 실제 연구를 해보니 재미가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, 나에게 더 잘 맞는 다른 분야가 어딘가에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항상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습니다.

2. 도대체 "새로운 가치"는 어떤 process를 통해 창출할 수 있는 것이지? 

 인턴을 하면서 논문을 읽어보긴 했지만, 그것만으로는 연구를 ‘어떻게’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정말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. 연구란 내가 풀어야 할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,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—예를 들면 새로운 알고리즘이나 새로운 해석—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들 하지만, 그 말 자체가 너무 추상적으로 느껴져서 실제로 그 목표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 전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습니다. 교수님께 이런 고민을 여쭤봐도 말로는 이해가 되는 것 같으면서도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고, 그래서 더 막막함과 답답함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.

 

이 두가지 질문이 해소된 시점이 제가 연구에 흥미를 붙이게 된 시점인데, 그 과정을 이제 설명해보려고 합니다.

1. 이 분야가 나에게 최선인가? 정말 이 분야를 하면 재밌게 연구할 수 있을까?

 저는 학사 졸업 후, 운이 좋게도 군복무를 연구소에서 하고있습니다. 이 기간 동안은 개인 연구를 하지 않더라도 커리어 측면에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습니다. 덕분에 연구에 대한 부담을 어느 정도 내려놓고, ‘꼭 연구를 해야 한다’는 압박 없이 제 스스로를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습니다. 그래서 평일에는 퇴근 후에, 주말에는 시간을 내어 정말 다양한 분야의 논문을 읽고 간단한 실험들도 조금씩 해보며, 어떤 분야는 어렵고 재미가 없고, 또 어떤 분야는 의외로 흥미롭게 느껴지는지를 체감하는 시간을 약 7개월 정도 가졌습니다.

 예를 들어 이미지 생성 분야는 저에게 솔직히 너무 어려웠고, 논문을 읽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. 수학을 좋아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, 당시 제 이해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느낌이었습니다. 언어 모델, 예를 들면 ChatGPT와 같은 분야도 공부해보긴 했지만 어느 정도 흥미는 있었어도 ‘이걸 꼭 하고 싶다’는 강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. 그렇게 7개월 동안 뚜렷하게 풀고 싶은 문제가 떠오르지 않아 막연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던 중, 약 3주 전쯤 선배 형들이 요즘 주목받고 있는 재미있는 분야가 있다며 관련 논문과 간단한 아이디어를 소개해주었습니다. 그 순간 이상할 정도로 그 문제가 너무 풀고 싶어졌습니다.

 이 분야는 로봇을 위한 이미지 처리, 즉 하나의 이미지를 로봇이 이해하기 쉬운 벡터 표현으로 변환하는 연구인데, 시뮬레이션 속에서 로봇이 실제로 움직이고, 제가 잘 설계한 모델에 따라 로봇의 행동이 달라지는 모습이 상상만으로도 무척 흥미로웠습니다. 무엇보다 논문이 이전과는 다르게 술술 이해되었는데, 아마도 지난 7개월 동안 다양한 분야를 두루 접하며 자연스럽게 실력이 쌓인 덕분에 딱 맞는 타이밍이었던 것 같습니다. 그렇게 저는 이 분야를 정말 해보고 싶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.

 결과적으로 지난 7개월 동안 여러 분야를 공부하며 대부분은 ‘그럭저럭’이라는 느낌에 머물렀지만, 선배들의 소개를 통해 우연히 이 분야를 만났고, 그동안 충분히 둘러보고 고민해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은 큰 후회 없이 이 주제에 집중할 수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.

2. 도대체 "새로운 가치"는 어떤 process를 통해 창출할 수 있는 것이지? 

 이 과정에서도 형들의 도움이 거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. 형들은 컴퓨터 비전, 즉 이미지 처리 분야를 연구하고 있었고,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컨퍼런스에 논문을 게재한 경험이 있었습니다. 그래서 관련 논문을 읽을 때마다 생기는 궁금증들을 형들에게 바로바로 물어볼 수 있었는데, 예를 들면 “이런 연구는 이미 있지 않아?”, “이 논문은 왜 새롭다고 말할 수 있는 거야?”, “어떤 논문은 실험 수가 적고, 어떤 논문은 왜 이렇게 실험이 많아?” 같은 질문들이었습니다.

 이런 질문들에 대해 형들의 설명을 듣고, 또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적어도 컴퓨터 비전이라는 분야에서는 ‘새롭다’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, 그리고 그 새로움을 어떤 과정과 논리로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감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. 더 나아가 논문을 컨퍼런스에 accept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실험들이 필요하고, 무엇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구성해 설명해야 하는지 등, 연구의 기술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연구 과정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.

 

 이런 경험들을 거치면서 그동안 저를 가로막고 있던 두 가지 큰 장애물이 자연스럽게 해소되었고, 그때부터 연구가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. 막연하기만 했던 연구의 과정이 조금씩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고, ‘내가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’, ‘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’에 대한 기준도 생겼습니다. 그 결과 연구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담보다는 호기심과 몰입감이 더 커졌고, 이제는 스스로 즐기면서, 그리고 열심히 연구에 매달릴 수 있게 된 것 같아 행복합니다.

 

 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난 운이 좋은 케이스여서, 도움이 많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, 혹시 "내가 연구에 소질이 있을까?", "나한테 맞는 분야가 있긴 할까?"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제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하나의 ground truth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. 

 

감사합니다!